문득, 배움이 고독하게 느껴질 때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드실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 왜 이 길은 늘 외롭기만 하지?"
밤늦게까지 책을 읽고, 정리하며 스스로와 싸우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2500년 전에도 똑같은 고민을 했던 이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공자.
그리고 그가 논어의 첫 구절에서 우리에게 속삭이듯 던진 말이 있습니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으시나요?
이 글에서는 짧은 구절이 가진 놀라운 의미,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 삶에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깊이 있게 풀어보고자 합니다.
배우고 익히는 것, 그 자체로의 기쁨입니다
첫 문장,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는 단순한 '공부의 미덕'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배운다(學)'는 것은 지식을 축척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세'를 익히는 것이며
'익힌다(習)'는 것은 그 배움을 반복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결국 이렇습니다.
“배우고, 삶 속에서 실천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자체로 기쁨이 밀려온다”
요즘 시대엔 속도가 곧 능력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꾸준한 배움은 마치 시대착오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삶은 '속도가 아닌 깊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조용히 익히고 실천하다 보면, 어느 날 누군가 묻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알게 되셨어요?"
그건 사실 오랜 시간 자신만의 방식으로 '습(習)'해온 결과인 것이지요.
친구가 먼 데서 찾아오면, 어찌 즐겁지 않으랴
두 번째 문장, "유붕자원방래 불여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는
지금 시대의 '찐친', '깊은 연결'을 말합니다.
이때의 '朋(벗)'은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함께 배우는 이, 같은 철학을 품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과 마음이 닿아 있고, 먼 곳에서 찾아온다면
우리는 거리나 시간에 상관없이 진정한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이 문장은 특히 요즘처럼 '관계의 피로감'이 큰 시대에 더 울림이 깊습니다.
SNS에서는 수많은 이들과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진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없는
그런 고독함 속에서 이 말은 우리에게 깊은 위로를 줍니다.
혹시 지금 떠오르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마음속에 '함께 공부하고 성장했던 사람'이 떠오른다면, 그 인연이야말로 지금 여러분 삶의 큰 선물입니다.
인정받지 못해도 성내지 않는 사람, 그가 진짜 멋진 어른입니다
세 번째 문장,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는
개인적으로 이 구절을 가장 좋아합니다.
세상이 나를 몰라준다고 화내지 않는 것, 그게 바로 '군자'입니다.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열심히 일했는데, 아무도 몰라주고
진심을 다했는데, 오히려 오해받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억울하고, 분노하게 되죠.
하지만 공자는 말합니다.
"진짜 멋진 사람은, 그런 대접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외부의 평가가 아닌, 자기 기준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자기 확신', '내면의 중심' 같은 이야기일 겁니다.
이 문장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을 믿고 있나요?"
그렇다면 괜찮습니다. 지금 당장은 몰라줘도, 결국 그 진심은 길을 만들어줄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오늘, 나는 군자에 한 걸음 가까워졌는가
이 세 문장.
짧지만, 한 사람의 인생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배우고 실천하는 삶, 벗과의 기쁨, 자기중심을 지키는 태도
이 세가지는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통하는 삶의 기본 원리입니다.
오늘 하루가 너무 외롭고, 억울하고, 허무하게 느껴지신다면
잠시 논어의 첫 문장을 떠올려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조용히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오늘, 무엇을 배우고 익혔는가?"
"오늘 나에게 찾아온 벗은 누구였는가?"
"그리고 나는, 나를 믿었는가?"
공자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공하라"라고
"인정받아라"라고
그는 단지,
"배우라, 익히라, 그리고 자신을 잃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단순함이, 오히려 가장 강력한 지혜 아닐까요?